우리 나라 디자인의 역사와 철학

By | February 3, 2014

이 글은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한 자료입니다.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시고, 다른 웹사이트로 복사해가지 마세요.

(이 글은 김종균 교수님의 책 「한국디자인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디자인사가 21세기에 들어서도록 합의된 하나의 정론을 형성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주체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서구의 역사 서술 방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우리의 실정에 ‘한국적’으로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의 시선으로 디자인사를 정리한다면 우리나라의 디자인사는 언제까지나 서구의 디자인을 따라가는 것으로만 서술될 것입니다.

우리나라 디자인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구 디자인의 평가 척도인 근대화와 모더니즘이라는 기준을 수정해야 합니다. 비서구권의 개발도상국, 경제적으로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나라들에서 받아들여진 모더니즘은 과거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념이 사라진 상업적 가치, 스타일로서의 모더니즘이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개혁의 표상으로, 자유주의를 선전하는 이데올로기로, 반공과 근대화의 상징으로, 수출 상품을 위한 기술로서 모더니즘 스타일이 받아들여지고 활용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과정을 담아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운동이라는 서구적 가치기준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또한 디자인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디자인사의 서술 범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통공예까지 범위를 확장한다면 우리나라 디자인사는 오천 년의 역사가 될 것이고, 근대적 문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일제 강점기, 대중적인 생산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미군정기, 산업화에 기반을 둔 대량생산을 근거로 한다면 1960~1970년대가 우리나라 디자인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서구의 모더니티 (근대성) 가 등장하는 시기, 즉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고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시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부터 디자인의 출현 시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강박적으로 역사를 길게 늘이는 것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근거로서 우리나라의 디자인사를 한국전쟁 이후부터 서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혼란을 피하는 길일 것입니다.

1. 역사적 특수성

서양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디자인의 역사적 특수성을 정리해보면 첫째, 식민지 상황에서 비롯된 전통조형문화의 단절과 미군정을 통한 이식문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자생적인 문화운동이 아닌 중앙정부에 의한 인위적인 디자인 육성정책과 이를 통해 계몽주의 디자인관이 반세기 동안 팽배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육성된 소수의 디자인 엘리트들에 의하여 우리나라 근대 디자인의 기틀이 형성되어 왔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특수성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국 근대화와 디자인 진흥정책

우리나라 사회에서 디자인의 출발은 유럽 사회처럼 수공예 전통이 공업화의 물결에 편승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근대화 과정 대부분이 정부의 정책적인 주도와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디자인도 정부의 진흥정책과 대기업 활동 속에서 등장하였습니다. 개인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에 의해 디자인이 주도되었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변화를 보여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 6․25 전쟁을 겪으며 전통공예는 근대 디자인과의 연결고리를 잇지 못해 계보상으로 따져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근대적 개념의 산업디자인은 철저히 조국 근대화의 논리와 함께 출발하였고, 그 주체가 정부와 산업체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디자인은 1960~1970년대 정부의 수출확대정책과 맞물려 산업의 도구로서 도입되었고, 대기업 중심 성장정책에 따라 기업체 내의 ‘인하우스 디자인’ 개념이 일찍이 정립되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인위적으로 진흥된 디자인은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유기적인 흐름을 형성하지 못하였고, 인하우스 디자인 체제는 디자이너를 부각시키지도 못하였습니다. 후발산업화 국가의 모방전략은 디자인을 작품이나 문화로 인식하기보다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제주의 체제와 독재정권을 거치며 오랜 기간 동안 시민사회는 물론 대중문화도 등장하지 못했던 탓에 우리나라의 근대 디자인은 산업을 위한 기술을 탈피하지 못하였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섬유산업과 디자인이 혼동되었고, 포장지 부실로 인해 수출 클레임이 자주 발생하자 ‘포장’과 ‘디자인’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디자인은 반공 이데올로기, 경제 성장정책, 쇼비니즘 chauvinism 맹목적 애국주의 에 갇혀, 경제 성장에 가장 우선시되는 분야와 방향으로만 발전하였습니다.

1960년대 우리 나라 3대 디자인 진흥기관의 사업 내용. 이들은 1970년도에 한국디자인포장센터로 통폐합되었습니다.

(2) 계몽주의 디자인

우리나라 사회는 한국전쟁 후 50년 동안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해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같은 인위적인 산업 진흥 노력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문화정책은 다소 경시되었습니다. 디자인의 인위적인 진흥은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집중과 지원으로 인해 제품에 있어서는 짧은 기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낸 반면, 경제적 가치 이외의 부분, 즉 문화적 속성으로서의 디자인의 역할에 있어서는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의 관여는 관료화를 낳았고, 급기야는 디자인 면에 있어서 획일적이고 경쟁력 없는 생산물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자율화 조치와 대중문화 개방을 통한 국내 대중문화 형성을 통해서 극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0년대 WTO 체제로 전환되면서 기업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나서야 기업들의 디자인 경쟁력은 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중문화 개방, 심의기구 축소, 사전검열제 폐지 등과 같은 공적 개입의 축소와 함께 시장개발, 민영화, 저작권보호, 스크린쿼터제 등의 시장유통구조의 합리화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스스로의 자생력을 가지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3) 기술 관료화와 디자인 교육

우리나라 디자인이 서양 디자인 발전 과전과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또 다른 부분은 디자인 교육입니다. 서양 사회에서는 산업화의 흐름을 뒤쫓아 디자인 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제도권 내의 정규 교과 과정으로 디자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미군정을 통하여 1940년대 중반에 근대 디자인 교육과정이 개설되고, 미국의 영향으로 디자인 교수 요원까지 길러졌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은 이를 쫓아오지 못해서 한참 후에야 산업디자인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산업에 앞서서 형성된 디자인 교육계는 디자인이 도입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 중반부터 국가 정책 입안자들을 도와 디자인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였습니다. 이후 중앙집권적인 디자인 진흥기관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정부는 디자인 교육자들을 흡수하고, 상공미전 운영과 협회 지원금으로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디자인 교육자들을 ‘기술 관료화’시켰습니다.

(4) 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鬪爭”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디자인의 역사를 요약하자면 ‘근대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등의 역사’이며, 더 깊게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갈들의 역사’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갈등이 드러나는 표현 방식이 변화하기는 하였으나, 결코 그 본질적인 갈등의 구조가 변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 디자인 역사의 발전 과정

근대주의가 시대사적 과제였다면, 민족주의는 역사적 과제였습니다. 서구화와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시대사적 갈등을 겪어온 우리나라 디자인 발전사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가장 첨예한 문제는 언제나 ‘근대화’와 ‘문화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근대화에 대한 논의는 늘 서양의 최신 디자인 사조를 형식적으로 수용하는 형태를 보여 왔습니다. 문화 정체성의 논의는 일제 강점기 이후로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 감정과 당위성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습니다. ‘한국적’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속된 문화 정체성의 논의는, 근대화 논의와는 별도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그 독자적인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근대화의 논리로 무장되었던 디자인 논의는 21세기 경쟁 시대의 고부가가치 창출과 시장 경쟁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여전히 그 논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개발주의 시대의 거대 토목공사는 도시 디자인, 국가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하여 점점 더 거대한 담론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나란히 일본인과 미국인 시각으로 만들어진 관광 삼품의 논리가 1980년대에 재연되어 현재의 삶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형성된 민족주의 논리도 역시 기념비적인 유적지로 변모해 그 흔적을 일상 곳곳에 남겨두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변모된 민족주의 흐름을 형성해냈습니다.

근대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디자인 흐름이 각기 평행선을 달리지 않고 하나로 조화롭게 뭉쳐질 때, 혹은 더욱 다원화되고 개성적으로 변모해갈 때 우리나라 디자인은 더욱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디자인의 문화 정체성과 방향

(1) 오리엔탈리즘과 문화 제국주의

양극 체제가 붕괴된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라는 단일 체제, 단일 문화로 통일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란 힘의 논리에 지배되며 국가간의 커뮤니케이션 증대라는 순작용보다는 제국 문화의 일방적 전파와 지역 고유문화의 말살, ‘획일화’와 ‘문화 경제적 종속’이라는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문화 제국주의라는 전 세계적 통합 추세의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양상이 지역화 localization, 다극화이며,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보급과 더불어 급속히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또 서구 제국주의적 경제식민 체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문화의 보편성과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문화 정체성은 특정 집단의 역사적 경험이나 지리적 근접성, 미래에 대한 공통 목표 등에 의해 구성되며, 집단 구성원들에게 문화적 동질성과 독자성, 그리고 현실 이해에 대한 공통의 지침을 제공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의 정체성 논의는 단순히 문화 복권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문화 제국주의는 서구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다국적 문화산업이 생산하는 대중문화가 전 세계의 다양한 민족문화를 파괴하고 획일화시킵니다. 전후 종속적 자본주의의 발전을 거치고 있는 우리나라도 고유한 민족문화가 서구의 소비적인 대중문화에 의해 많은 부분 왜곡되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라 디자인의 정체성을 논의할 때 제국주의에 대한 피해의식을 계속 간직하고 국수적 성향으로 흐른다면, 우리나라의 조형문화가 세계사, 혹은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은 문화나 산업, 경제력 등에서 세계적 영향력이 미약한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직시한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려 하지 말고 세계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에 담아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에드워드 사이드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서구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동서의 동등한 공존과 화합입니다. 다문화주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간 제국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이 아니라, 제국주의 소산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문화의 겹치는 영역’,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발견하여 동서의 상호 이해를 촉진하고 동등한 공존의 방향을 모색해나가는 것입니다. 오리엔탈리즘적, 혹은 문화 제국주의적 성향과 우리 내부의 타성을 극복하고, 문화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수구적이고 기계적인 원형 추구라는 방어적 자세로는 대응해 나갈 수 없습니다.

문화나 산업, 경쟁력 등에서 우리나라의 세계적 영향력이 미약한 현실 상황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습니다. 이 논리대로 ‘한국’을 ‘아프리카’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가장 아프리카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지․곤지 찍고 단장한 신부’, ‘전통 탈’이 이방인의 눈에는 위 사진처럼 보일 것인데, 이런 소재들을 통해 세계 보편성을 획득하겠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습니다.

(2) 다문화주의 시대의 문화 정체성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생명공학, 나노기술, 디지털 혁명등과 같은 급속한 발전상은 근대적 인간상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나가고 민족문화를 새롭게 구성해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돌파구입니다. 현대사회에서의 디자인의 역할은 전통 산업사회에서의 디자인의 역할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디지털과 네트워크로 대변되는 현대의 상품은 그 물성이 점차적으로 약해지고 있으며, 문화적 속성의 비중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 제국주의적 요소가 이미 우리 사회 내부에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정적 대립이나 부정보다는 시대사적 흐름에 순행하여 문화생산의 논리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장 메커니즘 속에서 문화 창조의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서양 문화 추구도, ‘민족문화’에 대한 지나친 아집도 버려야 합니다. 국제화의 조류 속에서 현대적 가치간과 대중적 흡수력을 바탕으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릴 줄 아는 분별력을 가져야 하며, 거대 문화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민주적 문화 형성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철학자 탁석산은 그의 저서 「한국의 정체성」에서 한국 정체성의 판단 기준은 ‘현재성’과 ‘대중성’, ‘주체성’을 그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현재 대부분이 한국적 정체성의 판단 근거로 삼는 시원 始原 의 문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과거의 것이라도 재현되어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의 것이며, 시원만 존재하고 현재에는 없는 ‘우리의 것’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입니다. 그 시원이 외국의 것이라 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내부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융성하여 발전한다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이며, 아무리 좋은 것을 소개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내에서의 개성적인 주체적 수용이 없는 한 우리 문화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탁석산은 또한 ‘현재성’과 함께 대중의 지지와 호응이라는 ‘대중성’을 확보할 때에야 비로소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혼합’과 ‘융화’는 분명 다른 것이기 때문에 유입이 된다고 하여 모두 우리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탁석산은 ‘서편제’와 ‘쉬리’의 예를 들어서 이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현재의 소수 한국인이 즐기고 부르는 판소리보다는 더욱 대중적이며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쉬리’를 더욱 한국적이라는 논지입니다.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설령 현대의 변화된 문화전통이 외래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문화 수용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일본 문화든 미국 문화든 간에 그 문화는 우리나라의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체성과 고유성은 시원의 문제가 아니며 수용 주체의 개성의 문제입니다. 원조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형식, 내용면에서의 토착화와 창조적 수용을 통해 현재의 우리나라 문화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하고 다원화하는 것이 생산적인 문화 정체성 논의의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3) 디자인의 방향

에드워드 카 Edward Hallett Carr 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역사는 현재의 시각에서 어제와 오늘을 평가하며, 내일의 세계를 바라보게 합니다. 급속한 사회 변화와 문화적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나라 디자인계는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전통문화를 뒤질 것이 아니라, 열린 세계 보편적 특성과 대중적 현대문화의 토대 위에서 그 정체성 담론을 형성해나가야 하며, 세계사적 조류 속에서 영향력을 가진 새로운 조형문화를 창조해야 합니다.

2000년 이후 각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문화 정체성 담론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적 영향력 확대, 오리지널리티의 확보, 산업자원 가치의 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문화산업을 통한 지속적인 발전과 영향력 증대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각계에서 기술, 산업 표준을 제시하고 디자인계에서는 신조형사조를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문화 의제를 선점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고유한 전통문화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보다는 현대 세계 문화를 한국화시키고, 다시 이것을 세계화시켜나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세계 문화를 우리 것화하는 노력과 계속되는 새로운 문화실험 속에서만 새로운 문화산업이 꽃필 수 있으며, 우리나라 디자인의 세계적인 조형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산업기술은 시간적인 간격만 극복된다면 누구에게나 추월당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문화적 척도, 가치관, 조형 양식에 있어서의 고유한 독창성을 찾아 발전시켜야 합니다. 문화 정체성 논의는 서구 조형문화의 모방, 복제로부터 주체적인 시각에 의한 부단한 문화실험과 자기 혁신을 통해 신조형문화 전통을 세우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민족주의나 고유성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스타크래프트는 미국의 게임․문화이지만, 탁석산이 제시하는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인터넷 산업을 주도하고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인터넷 카페 문화를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이 게임은 한국적인 게임․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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